사진공간 배다리 포트폴리오 3기(A팀) 결과보고전
'사진, 그런데'
2017. 7. 22 ~ 8. 2
권해진 김동범 박건태 신영효 양경수 유동희 이병권 최순한 홍성희
오픈식 : 7월 22일 오후 6시

<비평>
사진, 그런데
사진에서 의미는 본 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사진에 묘사된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지만, 그것을 말로 옮기고자 할 때 우리의 의식은 그것을 각기 다른 것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묘사의 대상이 된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한 것은 본 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미지를 보는 방법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보는 자의 시점이다.
해석은 새로운 설명을 통해서 이미지와 보는 자의 시점을 바꿔 지속적인 변화와 교섭한다. 사진 이미지 그 자체는 매우 여러 가지 해석의 길을 열어놓아 그것을 보는 사람이 확실한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의 이런 특징을 보완하기 위해서 사진의 편집과 배치, 텍스트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문제는 사진 이미지는 언어처럼 통사론적인 약속된 문법의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진 촬영된 대상과 형태, 내용을 어떻게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배열할 것인지 관건이다. 일정한 규칙이 없기 때문에 사진가는 보는자의 의식과 입장에 따라 사진가의도와 다르게 내용이 전달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해둔 작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고집스럽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매번 똑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대상만을 찾는 사냥꾼이 아니다. 당연히 테크닉이 마치 예술의 기본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 보다 앞서 사진가가 선택한 대상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보여질지 연구해야 한다. 그것은 작업중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고, 그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지만,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유의 태도를 말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작업한 것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통상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그 대신 문제시되는 것은 이 사진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말과 외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되었는가 이다.
이것이 지난 1년 동안 포트폴리오 과정을 통해 우리가 공부한 내용이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사진을 잘 찍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좋은 작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너무 급하게 방법과 요령을 배우면 놓쳐버리는게 있다.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지 그 출발을 말이다.
지도교수(이영욱)

권해진 성수동
성수동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같은 공간에서 머무르고 있다.
근대의 붉은 벽돌 창고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고 뚝섬구길 구부러진 골목길에서 어릴 적 냄새를 맡는다.
휴일 오후 크고 작은 공장들에서 쏟아져 나온 젊은 날의 공돌이 공순이 들이 원색 옷으로 치장을 하고 동부극장 주위를 배회하던 곳이 성수동이다.
지금 성수동의 모습은 서울 최고의 아파트와 구부러진 골목길의 낡음과 가난함이 같이 장소와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다.
일주일 노동의 힘들고 고단함을 위로받았던 청춘들 대신에, 세련되고 현대화된 대형카페에서 과거와는 또 다른 청춘들이 성수동의 거리를 메우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수동을 막연히 바라보았다.

김동범 <포근한 부모님 품과 같은 고향에 돌아오다>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온 고향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내가 태어난 집이였다. 사람과 동물들이 어둑어둑해지면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본능처럼 인생의 1막 2장에서 내가 태어난 집을 찾고 싶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인지 여러 번의 지번변경과 도시의 발전으로 인해서 태어난 집의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은 포근한 부모님 품과 같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한 소중한 시간이 되어 포트폴리오 주제로 고향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번 포트폴리오 작업을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즐겨 부르시던 「검은 장갑」의 가사와 함께 사랑하는 가족과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바칩니다.
-검은 장갑-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 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맺음말:
1년 동안 아낌없는 지도와 편달을 해주신 이영욱 교수님과 사진공간 배다리와의 연을 만들어 주신 이상봉 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건태 만수목욕탕
목욕탕에 옷을 입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옷을 입었을 때 그 사람을 평가하고 직업과 직위를 가늠 할 수 있지만 옷을 벗은 목욕탕에서는 감추는 것 없이 정직하다. 내 삶이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이웃하며 지내온 탓인지 저녁마다 들르는 목욕탕에서 마주친 이웃들의 모습에 관심이 갔다.
충남 금산 읍내에 만수목욕탕 이야기를 사진으로 남기려 한다.
목욕탕이란 주제로 사진을 찍기란 쉬운 일은 아니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사진을 담아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사진촬영은 주로 사람이 없는 야간 시간을 많이 이용했으며 손님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쳐 쓰러져 잠자는 모습과 휴식을 취하는 모습, 그리고 형제간에 등을 밀어주고 근심하고 걱정스러운 일들을 들어 주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 한참 육체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춘기의 중학교 체조선수들이 운동을 마치고 탕 속에서 필승을 약속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신체가 없으면 의식도 없고 세계도 없다. 우리는 신체를 통해 세상의 의미를 찾고 나와 세계를 접속해 나간다. 정신의 영역만큼이나 육체의 공간은 흥미롭다. 대중목욕탕은 지친 육체가 정화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민낯을 만나는 삶의 진피층이다. 목욕탕에서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1년이라는 긴 작업 끝에 “만수목욕탕” 이라는 작품을 선보이게 되어 타인의 시선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신영효 내친구
생활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문득 카메라를 집어 든다.
훠이훠이 파랑새 날으는 저기 어디, 꿈같은 행복이 아니라
주변에서 어떻게든 만나볼 소박한 것들을 찾아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지지와 공감을 나눌 친구,
기댈 수 있는 이웃 같은 것.
동무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들여다 보리라.
한 옹큼의 공감을 거기서 얻으리라.
동무 얼굴을 보며 거기서 내 얼굴, 내 모습도 발견하리라.
그리고 함께 늙어가리라.
늘 젊은 카메라를 데불고 ...

양경수 하나 그리고 둘
아이가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아빠가 되었다. 쑥쑥 크는 아이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사진기를 들었다. 사진 생활 십년이 되어가자 아이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아이에게 작은 카메라(자신을 수없이 찍어왔던 )를 주고, 찍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러보라 했다. 아이에게 사진은 참 쉽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담으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지도 않고 누른다. 귀찮으면 던져버리고 뛰어간다. 하지만 아빠에게 사진은 참 어렵다. 이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던져버린 카메라를 챙겨야 한다.
하나의 장소 또는 사물을 두개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두 시선의 차이와 연결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책'이라는 형식을 생각했다. 종이를 접고 바느질로 꿰매어 두 권의 책을 만들고, 하나의 표지로 묶었다. 이 책은 뒷면이 없다. 양쪽 모두 표지다. 책 가운데를 펼치면 속표지가 나온다. 양 손으로 한 장씩 오른쪽 왼쪽으로 동시에 넘기며 볼 수 있다. 이미지의 대비가 있고, 연결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사진은 찍는 대상 뿐 아니라 찍는 사람도 보여준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작업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 나아가 한 권의 책으로 묶음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들이 없으면 아빠도 없다. 너가 없으면 내가 없는 관계.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친구, 애인, 나와 너…
둘
그리고 결국 하나다.

유동희 돌 예찬
인간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섬들에 놓인 그들 앞에 서 본다.
태풍이 휩싸여도 천둥, 번개가 내려 쳐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찾아가 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 그래서 좋다.
산 속에 있는 돌은 남성적이라면 바닷가 섬에 놓인 돌은 여성적이다 -
그래서 좋다.
자존심이 강해 내가 다가 가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내가 그 겉으로 다가 가니 그들도 부끄러운 듯 손을 내민다.
결코 먼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기를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사랑과
숭고함을 느낀다.
지구상의 인간의 모습처럼 그들 모습 또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살아있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
떨어져 나간 분신들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던져 준다.
그래서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이 그래서 좋다.

이병권 전철풍경
우리는 알수없는 어디가에서 와서 또 알수없는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전철은 나와 내가 모르는 다른사람은 실고 각자 정해진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곳은 가본적도 가보지 않은곳도 있습니다. 옆에 있는 인간은 한번쯤은 아니 많이 본듯한데 그 와 나는 결코 아무런 대화가 없습니다. 이런 전철은 하루에도 수없는 사람과 거리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누구에게는 피곤한 삶에 쉬는 시간이고 누구에게는 사색의 시간일 것입니다.
이 전철안에서 나는 투영된 모습을 보거나 아니면 전철창밖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두시점 모두를 보려하지 않고 나의 생각대로 보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한가지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가지의 뒤섞여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나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것이 내가 정하여 만들어진 시간도 공간도 아닌 타의해 의한 종속적으로 만들어진 도심의 법칙에 내가 돌아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최순한 여기에 사는 이들
여기에 표현된 민족의 모습은
나만의 의식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식 세계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현실이다.

홍성희 섬에 가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푸른 바다가 함께 있는 그 곳.
인천 옹진군에 위치한 섬들을 두루 다니며 아름다움과 상쾌함에 흠뻑 빠져
보았다. 내가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카메라를 손에 잡은 후 부터 더욱 그러하다.
육지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파도가 일렁이는 배를 타고 출렁이는 망망대해를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벅차온다. 등대를 길잡이로 하여 섬으로 가는 길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허물어 가는 가옥은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고, 폐교 역시 이섬 저섬에서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병들어 가는 섬, 빈 섬으로 바뀌어 가는 섬을 본연의 섬으로 돌아 갈 수는 없을까? 모든 섬의 마을에서 젊은 사람을 보기란 어렵고, 미래의 섬 주인이 될 어린아이들을 보기란 더욱 힘들다.
반면 섬을 찾는 외지인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섬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의 후덕한 인심처럼 섬의 모습을 자연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섬에 가보니 사람 사는 세상은 거기나 여기나 거의 비슷한 삶의 모습이다.
다만 살아가는 방식만 다를 뿐....
사진공간 배다리 포트폴리오 3기(A팀) 결과보고전
'사진, 그런데'
2017. 7. 22 ~ 8. 2
권해진 김동범 박건태 신영효 양경수 유동희 이병권 최순한 홍성희
오픈식 : 7월 22일 오후 6시
<비평>사진, 그런데
사진에서 의미는 본 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사진에 묘사된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지만, 그것을 말로 옮기고자 할 때 우리의 의식은 그것을 각기 다른 것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묘사의 대상이 된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한 것은 본 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미지를 보는 방법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보는 자의 시점이다.
해석은 새로운 설명을 통해서 이미지와 보는 자의 시점을 바꿔 지속적인 변화와 교섭한다. 사진 이미지 그 자체는 매우 여러 가지 해석의 길을 열어놓아 그것을 보는 사람이 확실한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의 이런 특징을 보완하기 위해서 사진의 편집과 배치, 텍스트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문제는 사진 이미지는 언어처럼 통사론적인 약속된 문법의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진 촬영된 대상과 형태, 내용을 어떻게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배열할 것인지 관건이다. 일정한 규칙이 없기 때문에 사진가는 보는자의 의식과 입장에 따라 사진가의도와 다르게 내용이 전달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해둔 작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고집스럽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매번 똑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대상만을 찾는 사냥꾼이 아니다. 당연히 테크닉이 마치 예술의 기본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 보다 앞서 사진가가 선택한 대상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보여질지 연구해야 한다. 그것은 작업중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고, 그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지만,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유의 태도를 말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작업한 것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통상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그 대신 문제시되는 것은 이 사진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말과 외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되었는가 이다.
이것이 지난 1년 동안 포트폴리오 과정을 통해 우리가 공부한 내용이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사진을 잘 찍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좋은 작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너무 급하게 방법과 요령을 배우면 놓쳐버리는게 있다.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지 그 출발을 말이다.
지도교수(이영욱)
권해진 성수동
성수동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같은 공간에서 머무르고 있다.
근대의 붉은 벽돌 창고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고 뚝섬구길 구부러진 골목길에서 어릴 적 냄새를 맡는다.
휴일 오후 크고 작은 공장들에서 쏟아져 나온 젊은 날의 공돌이 공순이 들이 원색 옷으로 치장을 하고 동부극장 주위를 배회하던 곳이 성수동이다.
지금 성수동의 모습은 서울 최고의 아파트와 구부러진 골목길의 낡음과 가난함이 같이 장소와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다.
일주일 노동의 힘들고 고단함을 위로받았던 청춘들 대신에, 세련되고 현대화된 대형카페에서 과거와는 또 다른 청춘들이 성수동의 거리를 메우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수동을 막연히 바라보았다.
김동범 <포근한 부모님 품과 같은 고향에 돌아오다>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온 고향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내가 태어난 집이였다. 사람과 동물들이 어둑어둑해지면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본능처럼 인생의 1막 2장에서 내가 태어난 집을 찾고 싶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인지 여러 번의 지번변경과 도시의 발전으로 인해서 태어난 집의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은 포근한 부모님 품과 같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한 소중한 시간이 되어 포트폴리오 주제로 고향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번 포트폴리오 작업을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즐겨 부르시던 「검은 장갑」의 가사와 함께 사랑하는 가족과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바칩니다.
-검은 장갑-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 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맺음말:
1년 동안 아낌없는 지도와 편달을 해주신 이영욱 교수님과 사진공간 배다리와의 연을 만들어 주신 이상봉 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건태 만수목욕탕
목욕탕에 옷을 입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옷을 입었을 때 그 사람을 평가하고 직업과 직위를 가늠 할 수 있지만 옷을 벗은 목욕탕에서는 감추는 것 없이 정직하다. 내 삶이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이웃하며 지내온 탓인지 저녁마다 들르는 목욕탕에서 마주친 이웃들의 모습에 관심이 갔다.
충남 금산 읍내에 만수목욕탕 이야기를 사진으로 남기려 한다.
목욕탕이란 주제로 사진을 찍기란 쉬운 일은 아니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사진을 담아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사진촬영은 주로 사람이 없는 야간 시간을 많이 이용했으며 손님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쳐 쓰러져 잠자는 모습과 휴식을 취하는 모습, 그리고 형제간에 등을 밀어주고 근심하고 걱정스러운 일들을 들어 주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 한참 육체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춘기의 중학교 체조선수들이 운동을 마치고 탕 속에서 필승을 약속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신체가 없으면 의식도 없고 세계도 없다. 우리는 신체를 통해 세상의 의미를 찾고 나와 세계를 접속해 나간다. 정신의 영역만큼이나 육체의 공간은 흥미롭다. 대중목욕탕은 지친 육체가 정화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민낯을 만나는 삶의 진피층이다. 목욕탕에서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1년이라는 긴 작업 끝에 “만수목욕탕” 이라는 작품을 선보이게 되어 타인의 시선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신영효 내친구
생활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문득 카메라를 집어 든다.
훠이훠이 파랑새 날으는 저기 어디, 꿈같은 행복이 아니라
주변에서 어떻게든 만나볼 소박한 것들을 찾아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지지와 공감을 나눌 친구,
기댈 수 있는 이웃 같은 것.
동무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들여다 보리라.
한 옹큼의 공감을 거기서 얻으리라.
동무 얼굴을 보며 거기서 내 얼굴, 내 모습도 발견하리라.
그리고 함께 늙어가리라.
늘 젊은 카메라를 데불고 ...
양경수 하나 그리고 둘
아이가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아빠가 되었다. 쑥쑥 크는 아이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사진기를 들었다. 사진 생활 십년이 되어가자 아이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아이에게 작은 카메라(자신을 수없이 찍어왔던 )를 주고, 찍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러보라 했다. 아이에게 사진은 참 쉽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담으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지도 않고 누른다. 귀찮으면 던져버리고 뛰어간다. 하지만 아빠에게 사진은 참 어렵다. 이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던져버린 카메라를 챙겨야 한다.
하나의 장소 또는 사물을 두개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두 시선의 차이와 연결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책'이라는 형식을 생각했다. 종이를 접고 바느질로 꿰매어 두 권의 책을 만들고, 하나의 표지로 묶었다. 이 책은 뒷면이 없다. 양쪽 모두 표지다. 책 가운데를 펼치면 속표지가 나온다. 양 손으로 한 장씩 오른쪽 왼쪽으로 동시에 넘기며 볼 수 있다. 이미지의 대비가 있고, 연결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사진은 찍는 대상 뿐 아니라 찍는 사람도 보여준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작업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 나아가 한 권의 책으로 묶음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들이 없으면 아빠도 없다. 너가 없으면 내가 없는 관계.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친구, 애인, 나와 너…
둘
그리고 결국 하나다.
유동희 돌 예찬
인간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섬들에 놓인 그들 앞에 서 본다.
태풍이 휩싸여도 천둥, 번개가 내려 쳐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찾아가 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 그래서 좋다.
산 속에 있는 돌은 남성적이라면 바닷가 섬에 놓인 돌은 여성적이다 -
그래서 좋다.
자존심이 강해 내가 다가 가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내가 그 겉으로 다가 가니 그들도 부끄러운 듯 손을 내민다.
결코 먼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기를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사랑과
숭고함을 느낀다.
지구상의 인간의 모습처럼 그들 모습 또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살아있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
떨어져 나간 분신들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던져 준다.
그래서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이 그래서 좋다.
이병권 전철풍경
우리는 알수없는 어디가에서 와서 또 알수없는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전철은 나와 내가 모르는 다른사람은 실고 각자 정해진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곳은 가본적도 가보지 않은곳도 있습니다. 옆에 있는 인간은 한번쯤은 아니 많이 본듯한데 그 와 나는 결코 아무런 대화가 없습니다. 이런 전철은 하루에도 수없는 사람과 거리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누구에게는 피곤한 삶에 쉬는 시간이고 누구에게는 사색의 시간일 것입니다.
이 전철안에서 나는 투영된 모습을 보거나 아니면 전철창밖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두시점 모두를 보려하지 않고 나의 생각대로 보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한가지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가지의 뒤섞여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나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것이 내가 정하여 만들어진 시간도 공간도 아닌 타의해 의한 종속적으로 만들어진 도심의 법칙에 내가 돌아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최순한 여기에 사는 이들
여기에 표현된 민족의 모습은
나만의 의식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식 세계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현실이다.
홍성희 섬에 가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푸른 바다가 함께 있는 그 곳.
인천 옹진군에 위치한 섬들을 두루 다니며 아름다움과 상쾌함에 흠뻑 빠져
보았다. 내가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카메라를 손에 잡은 후 부터 더욱 그러하다.
육지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파도가 일렁이는 배를 타고 출렁이는 망망대해를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벅차온다. 등대를 길잡이로 하여 섬으로 가는 길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허물어 가는 가옥은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고, 폐교 역시 이섬 저섬에서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병들어 가는 섬, 빈 섬으로 바뀌어 가는 섬을 본연의 섬으로 돌아 갈 수는 없을까? 모든 섬의 마을에서 젊은 사람을 보기란 어렵고, 미래의 섬 주인이 될 어린아이들을 보기란 더욱 힘들다.
반면 섬을 찾는 외지인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섬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의 후덕한 인심처럼 섬의 모습을 자연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섬에 가보니 사람 사는 세상은 거기나 여기나 거의 비슷한 삶의 모습이다.
다만 살아가는 방식만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