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집현전 전시안내

집현전 전시안내

전시안내

<사진공간 배다리 포트폴리오 창작 워크샵 우수작가전> 이상설사진전 '구룡포읍 2014' 2015. 7. 3. ~ 7. 15

2015-06-17
조회수 8502

<사진공간 배다리 포트폴리오 창작 워크샵 우수작가전>


이상설사진전

‘구룡포읍 2014’

2015. 7. 3. ~ 7. 15

사진공간 배다리


작가와의 대화 : 2015. 7. 4 오후 3시, 1층 사진방 


HZ4A8104.jpg




<작가노트>


구룡포읍 2014

(잠들었던 기억의 흔적을 찾아서)


                                                                      이상설


내 고향 구룡포는 읍사무소가 있는 어촌이다.

일본인에 의해 개척된 어항으로 100년이 넘었다.

한때 25000명의 주민이 북적대며 풍요한 삶을 영위했던 곳.

지금은 8000명이 바다를 가슴에 웅크린 채 껴안고

과메기와 관광객이 가져다 주는 혜택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내 나이 65세.

결코 애틋한 향수나 쇠락해가는 것에 연민의 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억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걷는다.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 그리움이 묻어나는 벽을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기억이 나를 붙잡는 시간을 사진에 담는다.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멈추어버릴 것 같은 

허물어져가는 폐교

무너져 내리는 집들

헝클어진 그물

무대소품 같은 낚시꾼들

끊어진 활동 사진의 한 화면 위를 유영하는 착각에 빠진다.


사람이 떠나버리고 있는 곳에

역사문화거리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일본인가옥거리가 관광객을 부르고

한 집 건너 원색의 간판을 내거는 30곳이 넘는 다방들이 있다.                                  

그 사이로 외국선원 전용숙소가 생겨나고 생소한 ‘아시아마트’가 들어섰다.

화려한 간판 뒤에 빛 바랜 커튼을 내리고 숨 죽이며 웅크리고 있는 이 회색도시를

벤야민의 시간에 기대어

골목골목 나를 부르는 흔적을 더듬으며 방황을 하고 있다.



[서평] - 이영욱(사진비평)


구룡포九龍浦 “무의지적 기억이 기입된 공간”


이상설의 사진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는 왜 사진을 찍을까? 사진에서 기대하는 것이 정작 무엇이기에 너나 할 것이 없이 많은 사람들은 거의 매일 사진을 찍을까? 잃어버리기 쉬운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리고부터 사진 찍기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과거 사진이 귀하던 시절 사진 찍기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행위로 “세월이 지나면 사진밖에 없다.”라는 자조 석인 말로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담았다.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로 사진 만 한 것이 없고 또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대상으로 사진을 굳게 믿었다. 정말 그럴까? 이제 일상다반사가 된 사진 찍기가 가벼운 유희의 차원이 되었다. 사진의 활용은 더 이상 기억을 저장하는 순수한 의식을 점점 더 치르지 않게 되었다. 작가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의식’을 치르듯, 나고 자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구룡포’를 찾아가 지금은 그 흔적의 자취만이 남아 있는 고향(故鄕)땅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상설의 사진은 일반적으로 ‘구룡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즉, 한반도 지도에 꼬리처럼 튀어나온 ‘호미곶’ 일출과 바다에 솟아난 거대한 ‘손 모양의 조각상’과 ‘과메기’로 대표되는 보통의 상식적인 장면들이 없다. 즉 객관적 구룡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작가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일종의 여행 같은 기록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고향’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우두커니 대상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익숙한 듯 낯선 이 이상한 징후들.

 


기억 속에 그곳은 아직도 어릴 적 본 모습 그대로 또렷하고 선명하지만 야속한 세월은 그간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마을 전체가 온데간데없이 낯설다.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아낸 장소들 그곳은 덩그러니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타향 같은 ‘고향’이다. 졸지에 여행자의 신분으로 전락한 이 슬픔. 너무 많이 변해서 번지수를 찾지 못하는 야속할 것도 없는 이 멜랑꼴리의 가벼운 현기증.

 


지금은 없는 자신의 집의 위치를 알려주는 그 옆집, 아버지의 추억이 있던 옛 다방의 정취, 주인이 바뀐 친구의 옛 집터,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면 마주칠 것만 같은 어떤 소리들, 어머니가 늘 식수를 길어왔던 우물가, 폐허가 된 학교, 우두커니 서있는 동상의 뒷모습, 텅 빈 교정에 훌쩍 커버린 나무와 학생 수가 줄어든 조회시간. 작은 소용돌이가 치는 포구의 바다. 이 모든 것들은 작가가 직접 그 사연을 말해주기 전에는 그 어떤 ‘말’도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것이 사진 이미지가 제기하는 운명이다. 그래서 사진을 보는 것은 대상의 세부가 스스로 발산하는 암호화된 기호들을 퍼즐 맞추기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암호를 해독해서 의미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지적 기억 속에서 각인된 자신의 내면에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상설의 <구룡포>는 객관적 의미로서의 구룡포 전체모습이 아니다. <구룡포>사진의 특징은 ‘세부(디테일)와 흘러간 시간’의 두 축의 접합된 이미지다. 작가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이곳저곳은 고향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단서가 된다. 과거의 기억을 사진 속에 온전히 재현할 수 없으나 우연히 마주친 대상에서 평소에는 사라진 ‘무의지적 기억’을 되찾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이『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생각이다. ‘무의지적 기억’의 대상을 과연 사진에서도 경험 가능할까? 그것은 사진이 객관적 재현매체를 포기할 때만이 가능하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는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그것은 “재현으로부터 유사성의 해방이며, 재현의 비례와 어울림의 상실이라 했다.” 작가가 표상 불가능한 기억의 문제를 구룡포의 대표이미지로 객관적 재현을 했다면 당연히 개인 이상설의 기억에 대한 리얼리티는 실패했을 것이다. 기억을 표상체계에 끼어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는 모호하지만, 화면 전체 구도에서 볼 수 없는 세부디테일은 관객의 시선을 휘감고 돌아 사로잡는다. 세부는 이상한 징후에 이끌려 추측과 상상력을 강요받고 과거시간의 간극을 봉합하게 된다. 그것은 상상력만이 가능하고 사유이미지에서 결합한다. 작가의 지향대상(피사체)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작가가 의도한 기억의 흔적을 추적하는 장면에서 어긋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과거 기억을 현재화 할 수 없는 사진이미지의 숙명과도 같은 이 세계는 작가의 의식세계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도, 사진을 보는 사람이 알아차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대 유적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과 같아서 일반상식의 사회문화적 코드로는 불가능하고 새로운 코드들의 배치와 조형(figure)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사진 장면에 관심을 품고 바라본다면, 제각기 입장과 의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교양과 지식, 가치관의 차이와 관점에 따라 윤리와 정치적 견해, 역사적 장면으로서 혹은 미적 태도와 취미판단으로 해석하고, 의식을 채우는 것으로 수용한다. 이는 매우 주관적인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진이 지시하는 대상(인물이나 사물, 사건 등)에 공감이나 반감을 품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화적 관심에 기반을 둔다. 때로 그것들로부터 강한 감동으로 채워진 주관적 관심을 낳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코드를 매개로 하여 훈련된 교육에 의해 내면화되고 익숙해진 것이다. 사진이 원래 정보로서 전달되고 공유되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코드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지만, 사진 경험은 반드시 이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진에는 코드 화되지 않는 요소, 그것 자체로는 명명이나 규정될 수 없는 것이 있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고, 깨닫게 만드는 푼크툼(punctum)처럼 우발적 경험이 있다. 만약 이상설의 사진이 구룡포에 대한 객관적 정보들로 꽉 채웠다면 이러한 감정을 쉽게 불러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진은 지나간 과거 기억을 붙잡을 수 없다. 우리가 작가의 구체적 기억을 사진에서 만날 수도 없다. <구룡포>사진에서 보듯이 사진 이미지가 근본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기억 일반이 아니다. 사진에서 기억을 조립하는 사회적 코드의 의지적 기억들을 분리하고 코드화 할 수 없는 무의식이 기입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 그럴 때만이 무의지적인 기억이 되살아나서 사진이 발산하는 징후를 즐기게 된다. 프루스트가 마들렌과 홍차에서 콩브레 마을 전체를 기억해 냈던 것처럼 이상설의 <구룡포>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시간이 될 것이다.



HZ4A0166.jpg


HZ4A7652.jpg


HZ4A7437.jpg


HZ4A7838.jpg

바다와더불어-001.jpg


HZ4A9018.jpg


기억속-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