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별초대전 "청학동"
|| 작가 : 류은규
|| 전시기간 : 2012. 6. 29 (금) - 7. 18 (수)
|| 전시장소 : 제 1 전시실> 사진공간 배다리 (오후 1시 - 7시)
제 2 전시실> 아벨 전시관 (오후 1시 -6시)
■ 류은규 선생님 특별 초청 강연
|| 일시 : 2012. 7. 3 (화) 오후 6시 30분
|| 제목 : 류은규의 사진이야기
|| 장소 : 사진공간 배다리
|| 참가비 : 1만원
인천 소재 사진갤러리 '사진공간 배다리'의 개관 전시로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릴레이 전시가 첫 번째 휴머니스트 사진가 최민식 사진전에 이어
연변대의 류은규 교수의 '청학동'이 이어진다.
" 내가 청학동을 찍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나는 기록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그 동안 청학동을 찍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끌리는 것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청학동을 끊임없이 다녔던 것이고,
그때그때 내 마음에 끌리는 것만 촬영을 했다.
여기에 정리한 작품은 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청학동을 찍을 생각이다."
" 내가 청학동 사람들에게로 렌즈를 돌릴 때의 마음은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여덟 살짜리 코 흘리게 꼬마가 지금은 아이가 셋이 있는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같이 늙어 간다.
젊을 때는 내 스스로 전혀 인식을 못한 부분인데
시간의 무게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찍은 청학동 사진이 빛을 발휘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사진이라는 매체가 있기에 이런 기록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는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작가 노트 中 에서
================================================================
■ 작가노트 전문
================================================================
청학동에 관한 작가노트
청학동은 지리산 깊숙이 해발 850미터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청학동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지금부터 1000여 년 전인 신라시대이며,
그 후에 여러 문헌에서 청학동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신선이 푸른 학을 타고 다니는 지상의 낙원, 세속의 어떤 혼란과도 무관하며,
이곳에서 살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신선이 된다는 전설의 마을이다.
그러나 청학동이 어디인지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아
지금의 청학동이 전설에 등장하는 그곳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마을은 일제시기 나무를 벌초하는 목재공출기지로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가,
6.25때 빨치산이 산다는 이유로 공비숙청을 당해 마을이 소멸되었다.
그 후 1960년대 초, 옛날 전통을 지키고 세속의 문명을 거부하는 ‘유불선합일갱정유도’ 신도들이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지금의 청학동 주민들이다.
그러다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1970년대 마을 주민들이 이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도 하동군청에 마을 이름을 ‘청학동’이라고 제출하면서
청학동이라는 지명은 정식으로 이 마을의 것이 되었다.
내가 청학동을 찍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나는 기록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그 동안 청학동을 찍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끌리는 것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청학동을 끊임없이 다녔던 것이고,
그때그때 내 마음에 끌리는 것만 촬영을 했다. 여기에 정리한 작품은 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청학동을 찍을 생각이다.
세상에는 지금 청학동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선들이 사는 도인촌 이라고 듣고 찾아왔는데
으리으리한 기와집에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청학동인을 보고 실망했다 등,
다른 농촌과 다름이 없다, 등등.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인 향수로 이곳에 와서
청학동 사람한테만 불편한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난 30~40년을 뒤돌아봐서 우리 주변에 변하지 않았던 것이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공동화장실, 연탄보일러,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부뚜막에 불을 피우며 큰 솥으로 짓는 밥…….
서울에서 태어난 나만 해도 그 동안 생활해오면서 얼마나 큰 변화를 겪어 왔는지 모른다.
우리 주변 환경 중 변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변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해가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쉽다.
그러나 청학동에는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생활양식은 변해도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신념 즉 꿈이 있기에 청학동이 존재한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청학동을 찍는 나의 시선이다.
그 동안 나의 생활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내가 청학동 사람들에게로 렌즈를 돌릴 때의 마음은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여덟 살짜리 코 흘리게 꼬마가 지금은 아이가 셋이 있는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같이 늙어 간다.
젊을 때는 내 스스로 전혀 인식을 못한 부분인데
시간의 무게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찍은 청학동 사진이 빛을 발휘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사진이라는 매체가 있기에 이런 기록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는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가 류 은 규






* 사진공간 배다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2-07-19 14:48)
■ 특별초대전 "청학동"
|| 작가 : 류은규
|| 전시기간 : 2012. 6. 29 (금) - 7. 18 (수)
|| 전시장소 : 제 1 전시실> 사진공간 배다리 (오후 1시 - 7시)
제 2 전시실> 아벨 전시관 (오후 1시 -6시)
■ 류은규 선생님 특별 초청 강연
|| 일시 : 2012. 7. 3 (화) 오후 6시 30분
|| 제목 : 류은규의 사진이야기
|| 장소 : 사진공간 배다리
|| 참가비 : 1만원
인천 소재 사진갤러리 '사진공간 배다리'의 개관 전시로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릴레이 전시가 첫 번째 휴머니스트 사진가 최민식 사진전에 이어
연변대의 류은규 교수의 '청학동'이 이어진다.
" 내가 청학동을 찍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나는 기록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그 동안 청학동을 찍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끌리는 것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청학동을 끊임없이 다녔던 것이고,
그때그때 내 마음에 끌리는 것만 촬영을 했다.
여기에 정리한 작품은 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청학동을 찍을 생각이다."
" 내가 청학동 사람들에게로 렌즈를 돌릴 때의 마음은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여덟 살짜리 코 흘리게 꼬마가 지금은 아이가 셋이 있는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같이 늙어 간다.
젊을 때는 내 스스로 전혀 인식을 못한 부분인데
시간의 무게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찍은 청학동 사진이 빛을 발휘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사진이라는 매체가 있기에 이런 기록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는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작가 노트 中 에서
================================================================
■ 작가노트 전문
================================================================
청학동에 관한 작가노트
청학동은 지리산 깊숙이 해발 850미터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청학동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지금부터 1000여 년 전인 신라시대이며,
그 후에 여러 문헌에서 청학동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신선이 푸른 학을 타고 다니는 지상의 낙원, 세속의 어떤 혼란과도 무관하며,
이곳에서 살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신선이 된다는 전설의 마을이다.
그러나 청학동이 어디인지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아
지금의 청학동이 전설에 등장하는 그곳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마을은 일제시기 나무를 벌초하는 목재공출기지로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가,
6.25때 빨치산이 산다는 이유로 공비숙청을 당해 마을이 소멸되었다.
그 후 1960년대 초, 옛날 전통을 지키고 세속의 문명을 거부하는 ‘유불선합일갱정유도’ 신도들이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지금의 청학동 주민들이다.
그러다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1970년대 마을 주민들이 이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도 하동군청에 마을 이름을 ‘청학동’이라고 제출하면서
청학동이라는 지명은 정식으로 이 마을의 것이 되었다.
내가 청학동을 찍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나는 기록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그 동안 청학동을 찍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끌리는 것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청학동을 끊임없이 다녔던 것이고,
그때그때 내 마음에 끌리는 것만 촬영을 했다. 여기에 정리한 작품은 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청학동을 찍을 생각이다.
세상에는 지금 청학동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선들이 사는 도인촌 이라고 듣고 찾아왔는데
으리으리한 기와집에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청학동인을 보고 실망했다 등,
다른 농촌과 다름이 없다, 등등.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인 향수로 이곳에 와서
청학동 사람한테만 불편한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난 30~40년을 뒤돌아봐서 우리 주변에 변하지 않았던 것이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공동화장실, 연탄보일러,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부뚜막에 불을 피우며 큰 솥으로 짓는 밥…….
서울에서 태어난 나만 해도 그 동안 생활해오면서 얼마나 큰 변화를 겪어 왔는지 모른다.
우리 주변 환경 중 변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변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해가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쉽다.
그러나 청학동에는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생활양식은 변해도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신념 즉 꿈이 있기에 청학동이 존재한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청학동을 찍는 나의 시선이다.
그 동안 나의 생활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내가 청학동 사람들에게로 렌즈를 돌릴 때의 마음은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여덟 살짜리 코 흘리게 꼬마가 지금은 아이가 셋이 있는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같이 늙어 간다.
젊을 때는 내 스스로 전혀 인식을 못한 부분인데
시간의 무게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찍은 청학동 사진이 빛을 발휘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사진이라는 매체가 있기에 이런 기록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는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가 류 은 규
* 사진공간 배다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2-07-19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