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공간 배다리 기획초대전
유동훈사진전 ‘어떤마을’
일시 : 2013. 2. 22. ~ 3. 13
장소 : 사진공간 배다리
인천 동구 금곡동에 위치한 ‘사진공간 배다리’에서는 2013년 2월 22일부터 3월 13일까지 만석동 ‘기차길 옆 공부방’ 선생님인 유동훈씨의 사진전 ‘어떤 동네’가 전시된다.
‘기차길 옆 공부방’은 소설 ‘괭이부리 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씨를 통하여 이미 널리 알려진 만석동에 있는 공부방이다. 그는 이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을 썼었다. 여기 또 다른 기차길 옆 공부방의 이야기 주인공이 있다.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또 한 사람의 선생님 유동훈씨다.
20여 년을 어려웠던 시절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져주며 그들의 밝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온 유동훈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있을 당시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세상에 보인다.
지금 괭이부리말로 불리는 만석동 공부방 부근은 참 어렵게 사는 분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동네는 판자로 지어진 쪽방들이 마치 추운 겨울 서로 몸 비비며 체온을 유지하려는 동네 꼬마 아이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작은 방에 또 온몸 부딪치고 사는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러게 어렵게 사는 이곳 동네에 20여 년 전, 대학을 다니는 한 청년이 동네 작은 공부방에 첫 발은 디뎠고 이후 그는 공부방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곳에서 꿈꾸며 일하고 있다.
김중미 작가가 소설 괭이부리 말 아이들의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면 유동훈은 사진으로 20여 년 동안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아왔다. 이 사진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당시의 어려움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천진하고 밝고 환한 모습이다. 그 환한 모습으로 자라나고 견디어 이미 성인으로 그들의 삶을 살고 있다.
유동훈은 동네 아이들과 인형도 만들고, 목공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그는 함께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글로 남겼다. 그로서 그는 2010년, 포토에세이 ‘어떤 동네’를 출간하였다.
또한 어린이 책에도 관심이 많아 ‘새끼개’ ‘따뜻한 손’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등에 그림을 그렸다.
유동훈은 가난한 이웃들의 삶의 여정과 스스로의 삶이 하나이길 바라는 어떤 동네 사람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여는 첫 번째 기획초대전이다. 사진공간 ‘배다리’는 지난해 유명작가 중심으로 초대전을 실시하여 갤러리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개관 후 한 해를 넘긴 올해는 인천 지역의 사진가와 신인사진가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잡았다.
그 첫 번째 초대 전시로 인천의 만석동 공부방에서 20여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모셨다. 그는 사진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사진작업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이다. 사진에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또 밝은 미래가 있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통하여 오래 전 잊고 살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바라보고 친구를 보고 고향을 보고 또 부모님을 본다.
<작가노트>
89년 겨울, 내가 처음 만석동에 왔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28번 버스에서 내리자 비릿한 바닷내가 밀려왔습니다.
골목에는 굴껍데기들이 가로등 불빛에 거칠게 빛나고 있었고,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서는 늦은 저녁밥을 짓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작은집, 좁은 골목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 사는 냄새.
그 냄새에 취해 나는 이곳을 ‘우리 동네’라 호명하게 되었고, 어느덧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동네는 빼앗기고 힘없고 상처 입은 가난한 사람들, 근현대사의 질곡을 몸뚱어리 하나로 버텨내야만 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입니다.|
일제 강점기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합숙소에서 시작된 이곳에는 바닷가를 끼고 일본군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무기를 만드는 군수공장들과 농민들에게서 수탈한 곡물을 군량미로 쌓아 두던 창고들이 있었습니다.
그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피난민들이 내려와 갯벌을 맨손으로 간척하기도 하고 근처 낮은 산에 토굴을 파서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의 꼴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것은 6,70년대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올라온 이농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이때부터 다락방을 올리고 집과 집들이 연결되면서 온 동네가 한 덩어리의 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진 것 없어도 마음편한 내 집에서 이웃들과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삶을 꾸려갔습니다.
90년대가 시작될 즈음 우리 동네는 많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주의의 깃발아래 휘둘리고 밀려나 젊은이들은 떠나고 동네는 점점 공동화 되었습니다.
거친 파도와도 같은 세상 속에 죽은 듯 떠다니는 난파선처럼
소방도로로, 아파트로, 공원으로 동네 여기저기가 잘려 나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다시 한번 뿌리부터 흔들렸습니다.
그 변화의 시간 속에서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느냐? 물어오면 명확히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체계와 구조를 담겠다는 목적도, 양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굳이 답한다면 함께 보듬으며 옆에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삶의 공간 안에서 만난 많은 아이들과
굴곡진 역사를 살아온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
그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습니다.
상처 받아 아픈 아이들과 햇살 가득한날 낡은 벽에 기대어 함께 서있고 싶었고
어두운 방안, 그 안에서 원숙한 인간성을 느끼게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살림이 있어 내 눈을 노곤하게 녹이던 그 골목을 걷고, 부서져 버린 집들 위에 손을 얹으며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면서 삶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2012년 우리동네는 다시 동네 이곳저곳이 부서졌습니다.
순식간에 철거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집 앞에 서면 언제나 짙은 적막함이 가슴을 흝어내립니다.
밖에서 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름한 집들이지만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삶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고치고 채워 만든 집과 골목들, 그리고 그 속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삶.
사라지는 집과 골목을 바라보며 우르르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것은 단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추억과 감상이 주는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낮지만 엄연한 ‘삶’을 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진속 ‘또 다른 나’들은 그 간절함에 대한 증거이자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 닿고 싶은 미래의 증표들입니다.
* 사진공간 배다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3-17 01:08)
사진공간 배다리 기획초대전
유동훈사진전 ‘어떤마을’
일시 : 2013. 2. 22. ~ 3. 13
장소 : 사진공간 배다리
인천 동구 금곡동에 위치한 ‘사진공간 배다리’에서는 2013년 2월 22일부터 3월 13일까지 만석동 ‘기차길 옆 공부방’ 선생님인 유동훈씨의 사진전 ‘어떤 동네’가 전시된다.
‘기차길 옆 공부방’은 소설 ‘괭이부리 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씨를 통하여 이미 널리 알려진 만석동에 있는 공부방이다. 그는 이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을 썼었다. 여기 또 다른 기차길 옆 공부방의 이야기 주인공이 있다.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또 한 사람의 선생님 유동훈씨다.
20여 년을 어려웠던 시절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져주며 그들의 밝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온 유동훈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있을 당시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세상에 보인다.
지금 괭이부리말로 불리는 만석동 공부방 부근은 참 어렵게 사는 분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동네는 판자로 지어진 쪽방들이 마치 추운 겨울 서로 몸 비비며 체온을 유지하려는 동네 꼬마 아이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작은 방에 또 온몸 부딪치고 사는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러게 어렵게 사는 이곳 동네에 20여 년 전, 대학을 다니는 한 청년이 동네 작은 공부방에 첫 발은 디뎠고 이후 그는 공부방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곳에서 꿈꾸며 일하고 있다.
김중미 작가가 소설 괭이부리 말 아이들의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면 유동훈은 사진으로 20여 년 동안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아왔다. 이 사진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당시의 어려움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천진하고 밝고 환한 모습이다. 그 환한 모습으로 자라나고 견디어 이미 성인으로 그들의 삶을 살고 있다.
유동훈은 동네 아이들과 인형도 만들고, 목공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그는 함께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글로 남겼다. 그로서 그는 2010년, 포토에세이 ‘어떤 동네’를 출간하였다.
또한 어린이 책에도 관심이 많아 ‘새끼개’ ‘따뜻한 손’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등에 그림을 그렸다.
유동훈은 가난한 이웃들의 삶의 여정과 스스로의 삶이 하나이길 바라는 어떤 동네 사람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여는 첫 번째 기획초대전이다. 사진공간 ‘배다리’는 지난해 유명작가 중심으로 초대전을 실시하여 갤러리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개관 후 한 해를 넘긴 올해는 인천 지역의 사진가와 신인사진가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잡았다.
그 첫 번째 초대 전시로 인천의 만석동 공부방에서 20여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모셨다. 그는 사진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사진작업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이다. 사진에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또 밝은 미래가 있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통하여 오래 전 잊고 살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바라보고 친구를 보고 고향을 보고 또 부모님을 본다.
<작가노트>
89년 겨울, 내가 처음 만석동에 왔을 때는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28번 버스에서 내리자 비릿한 바닷내가 밀려왔습니다.
골목에는 굴껍데기들이 가로등 불빛에 거칠게 빛나고 있었고,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서는 늦은 저녁밥을 짓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작은집, 좁은 골목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 사는 냄새.
그 냄새에 취해 나는 이곳을 ‘우리 동네’라 호명하게 되었고, 어느덧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동네는 빼앗기고 힘없고 상처 입은 가난한 사람들, 근현대사의 질곡을 몸뚱어리 하나로 버텨내야만 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입니다.|
일제 강점기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합숙소에서 시작된 이곳에는 바닷가를 끼고 일본군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무기를 만드는 군수공장들과 농민들에게서 수탈한 곡물을 군량미로 쌓아 두던 창고들이 있었습니다.
그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피난민들이 내려와 갯벌을 맨손으로 간척하기도 하고 근처 낮은 산에 토굴을 파서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의 꼴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것은 6,70년대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올라온 이농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이때부터 다락방을 올리고 집과 집들이 연결되면서 온 동네가 한 덩어리의 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진 것 없어도 마음편한 내 집에서 이웃들과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삶을 꾸려갔습니다.
90년대가 시작될 즈음 우리 동네는 많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주의의 깃발아래 휘둘리고 밀려나 젊은이들은 떠나고 동네는 점점 공동화 되었습니다.
거친 파도와도 같은 세상 속에 죽은 듯 떠다니는 난파선처럼
소방도로로, 아파트로, 공원으로 동네 여기저기가 잘려 나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다시 한번 뿌리부터 흔들렸습니다.
그 변화의 시간 속에서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느냐? 물어오면 명확히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체계와 구조를 담겠다는 목적도, 양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굳이 답한다면 함께 보듬으며 옆에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삶의 공간 안에서 만난 많은 아이들과
굴곡진 역사를 살아온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
그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습니다.
상처 받아 아픈 아이들과 햇살 가득한날 낡은 벽에 기대어 함께 서있고 싶었고
어두운 방안, 그 안에서 원숙한 인간성을 느끼게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살림이 있어 내 눈을 노곤하게 녹이던 그 골목을 걷고, 부서져 버린 집들 위에 손을 얹으며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면서 삶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2012년 우리동네는 다시 동네 이곳저곳이 부서졌습니다.
순식간에 철거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집 앞에 서면 언제나 짙은 적막함이 가슴을 흝어내립니다.
밖에서 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름한 집들이지만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삶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고치고 채워 만든 집과 골목들, 그리고 그 속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삶.
사라지는 집과 골목을 바라보며 우르르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것은 단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추억과 감상이 주는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낮지만 엄연한 ‘삶’을 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진속 ‘또 다른 나’들은 그 간절함에 대한 증거이자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 닿고 싶은 미래의 증표들입니다.
* 사진공간 배다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3-17 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