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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김보섭사진전 앞두고 둘러본 '양키시장'

2013-04-07
조회수 7268
  • "홍예문 너머 양색시들이 많이 살았어."
  • 김보섭사진전 앞두고 둘러본 '양키시장'
  • 13-03-14 06:34ㅣ 김영숙 기자 (ich2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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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시선이 간 이유는 ‘오래된 자국’이 있어서다. 골목마다 연탄 땠던 흔적을 비롯해 사람 살던 '흔적'이 많은 곳이다. 인천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시장이지만, 지금은 따뜻한 어머니의 온기를 잃어가는 안타까운 장소가 되었다. ‘인천 사람의 흔적’을 담고 싶었다.”  사진작가 김보섭(58)씨는 동구 송현동 100번지 ‘양키시장’을 오랜 시간에 걸쳐 사진에 담았다. 3월 22일부터 4월 3일까지 ‘사진공간 배다리 포토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연다.


    3월 13일 오전 10시, 동인천역 북부광장에서 김보섭씨를 만났다. 그는 역광장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양키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좁은 가게에 무릎담요를 덮고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400원짜리 커피를 주문한다. 이번 전시 책자에 나온 ‘커피아줌마’였다. 장사한 지 30년이 되었다는 할머니는 창영초등학교를 나왔다. 가게에는 창영초등학교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다방에서 커피 300원 할 때 150원 받았어. 그때는 커피 팔던 집이 7~8집이었지. 나도 커피 팔려고 나온 게 아니야. 요샌 하루에 커피 20잔 겨우 팔아. 그냥 앉아있는 거야. 여기 드나들던 사람들 다들 죽었어. 문 닫힌 가게들은 사람이 아프거나 죽은 거야.” 할머니 말에 골목을 돌아보니 과연 문 닫은 가게가 많았다. 길다란 골목에는 전구가 간간이 켜져있어 어둑하다. “예전에는 벌금 내면서 장사했어. 지금은 말이 양키시장이지, 다 죽었어. 미제 팔 때가 좋았는데, 요새는 '쩨'가 깔렸잖아. 여기도 빨리 헐려야 하는데 안 헐려. 시에 돈이 없다며?” 좁은 가게 안에는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낀 가스테이블이 있고,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서는 물이 폭폭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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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옆 가게는 사진첩에 나오는 ‘미석이모’가 주인이다. “예전에는 세관들이 우리랑 출퇴근할 때도 있었어. 불법이라고 벌금 물리려고 일찌감치 오는 거지. 여기저기 물건 숨겨놓고 팔기도 했어. 그래도 사람 많던 그때가 좋았어. 요즘은 공치는 날 많아. 부평 손녀딸네 살면서 출퇴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요새도 물건 없다면서 아궁이에 숨겨넣고 파는 사람도 있어. 괜히 나와 있다는 사람들 다 거짓말이야. 장사가 괜찮으니까 나와서 앉아 있지, 왜 나왔겠어? 옛날에 여기 드나들던 노인네들 다 죽었어. 나는 아들 둘 먼저 보내고, 9년째 얼굴에 화장 안 해. 소띤데, 소띠가 액운이 많아. 이제 막내아들 하나 남았어. 자식들 생각하면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할 때가 많아. 당뇨기도 있어 걸음을 잘름잘름 걸어.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움직여야지, 안 그래?” 그러면서 할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쉰다. “언젠가는 여기를 다 허문다고 하더라구. 돈을 줘서 내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 가게가 오죽 많아야지. 2년 전에 시에서 사람이 나왔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시에 돈이 하나도 없대. 빚이 많대.” 하루종일 들어도 지루할 것같지 않은 할머니 말을 뒤로 남겨둔 채 뒷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골목 안에는 가게들이 하도 많아 어느 집이 어느 집인지 알 수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에는 몇 군데를 빼고는 대개 간판이 없다. 세관들이 나오는 일이 많아 아예 이름을 알지 못하게 가게 이름이 없다고 한다. ‘조화(만든꽃)’ 개나리꽃이 꽂혀 있는 이른바 ‘개나리집’에 멈췄다. 진열대에 나란히 놓인 과자가 얼마냐고 물었다. “그거 다 빈통이야. 없어. 사탕은 1200원이고.” 강희순 할머니는 웃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오래 하면 뭘해, 돈도 못 버는데. 여기서도 마트처럼 크게 해놔야 사람이 와. 저쪽 바깥쪽 집들은 물건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오지. 내 가게니까 계속 하지 세 내고는 못해. 그래도 여기서 벌어 애들 다 먹이고 가르쳤어. 지금은 물건이 없어. 돈이 없는데 어떻게 물건을 해다 놔. 그냥 나오는 거야. 조 옆에 군복장 파는 가게들은 여기랑은 따로야. 여기나 저기나 하루종일 한산해. IMF이후부터 잘 안 돼. 3,40년 전에는 와글와글했지. 골목이 미게 다녔어. 화장품, 옷, 신발, 과자, 초콜릿, 깡통이 많았어. 부평 미군부대에서 물건이 많이 나왔어.” 할머니는 이야기보따리를 줄줄 풀어놓았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데, 아는 사람은 ‘양키시장’ 하면 다 알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어. 나, 평생 떼돈은 못 벌고 살았어. 예전에는 옷, 신발, 담배, 옷, 화장품이 잘 팔렸는데, 이젠 팔아먹을 게 없어. 여기 있는 것도 예전에 팔다 남은 거야. 남대문시장보다 여기 물건이 더 많진 않았지만, 여기서 물건이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골목에 사람이 늘 많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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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을 돌아 이번에는 기억력이 아주 좋다는 할머니 가게를 찾았다. ‘은정이네.’ 은정이는 올해 46살 된 막내딸 이름이다. “홍예문 너머에 양색시들이 많이 살았어. 돈 되는 거니까 양키들이 부대에서 물건을 가져오고, 양색시들이 여기로 넘겼어. 양색시 집에서 물건 갖다가 여기로 넘기는 중간장사꾼도 있었어. 직접 양색시한테 사오는 사람도 있었구. 수인역 근처에 미군부대가 있었거든. 인천에 미군이 많으니까 인천항으로 배에 물건을 잔뜩 싣고 왔어. 수인역에서 지금 부평으로 배급 나갔어. 그땐 배가 오면 거기서 다 풀어서 창고에 넣고 전국으로 날랐지. 부산으로도 가고 여기로도 오고. 씨레이션이 많았어. 고기 담배 귤통조림 고기들이 한꺼번에 잔뜩 들어있었는데, 산에다 풀면 군인들이 그거 먹고 살았다잖아.필요한 건 다 있잖아.” 할머니는 물 한 잔을 마시고 계속 말을 잇는다. “자유당 시절하고 박정희 때는 물건이 많았어. 어디나 미군이 지천이었잖아. 요새는 수입장사들이 차로 물건을 가져와. 늙은이들은 기운이 없어 물건 사러 못 다니지. 어떤 날은 오후 두세시가 돼서 개시를 해. 나이든 사람들은 빨리 개발되길 바라지. 장사가 잘 되면 그러겠어? 빈 가게가 나와도 발전이 없으니까 안 들어와. 그래서 문 닫은 가게들이 많은 거야. 군복시장은 지금 다 국산이야. 예전에는 미군 쓰봉, 야전잠바도 팔았어. 여기는 깡통통조림을 많이 파니까 ‘깡통시장’이라고 불렀구. 어쨌거나 돈벌이가 됐으니까 5남매 다 가르쳤지. 나는 육이오 때 황해도 연백에서 아버지랑 삼촌이랑 내려왔어. 아버지는 인천항에서 미국 곡식과 밀을 부리는 반장이었어. 그땐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물건을 다 부렸거든.” “돈 버니까 양키들이 부대에서 물건을 많이 가지고 나왔어. 양색시들은 그거 갖다 팔구. 지금은 지정된 양만 살 수 있다잖아. 하긴 비싸서 팔리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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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비가 오면 이 골목에는 물 새는 집이 많다. 하늘이 보이는 곳도 있고, 천장에는 뒤엉킨 전깃줄에 먼지가 잔뜩 붙어있다. “다 뚫어졌어도 못 고쳐. 다칠까 봐 올라갈 수도 없어. 멀쩡한 길 파헤치지 말고 이런 데 지붕이나 고쳐줬으면 좋겠어. 여름에 비 오면 난리 나는 집 많아.” 장사가 한창 잘 될 때 어떤 사람들이 주로 왔냐고 물었다. “미군들은 여기 오지 않았어. 양색시들이나 왔다갔다했지. 당시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이었어. 서민들은 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올 수가 있나. 먹고 살 만해야 과자도 먹고 초콜릿도 먹구 햄도 먹고 얼굴에 화장도 하잖아. 커피도 마시구. 두레박깡통 알아? 다 먹고 나서 두레박 많이 만들었잖아. 그 큰 깡통 안에 치즈, 우윳가루, 돼지고기햄이 잔뜩 들어있었어. 지금은 구경도 못해. 우리 애들은 내가 파니까 그래도 많이 먹었지.” 할머니 이야기가 감칠나다. 

    골목 끝으로 불 켜진 수선집이 여럿 보인다. '영업 중'이다. 예전에 미 군복 스몰사이즈(s사이즈)를 사서 줄여입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살면서 간혹 이 동인천 양키시장을 떠올리기나 할까.


    골목이 어둡다. 수없이 늘어선 가게들이 좁고 길다란 골목을 만들었다. 찌그러진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안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값 흥정하는 소리, 깡통통조림 진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창 ‘잘나갔던’ 시절에는 100개도 넘었다. 한 자 반, 두 자, 세 자 등 가게 크기를 아직도 ‘자’로 셈하는 골목이다. 미 군복을 팔던 곳은 아예 다 국산을 파는 '옷가게'가 되었다. 아직 미군복과 군장을 같이 파는 곳은 세 군데가 있다. 시장 위로는 오성극장이 있었다. 지금은 굳게 닫힌 극장 입구. 흐릿한 불빛에 극장 안으로 올라가는 층층대가 보인다. '애관 2관'이라고도 씌어진 간판이 아직 붙어 있다. 한때 '동인천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는 김보섭 사진작가는 이 골목에 극장이 특히 많았다고 한다. “이 동네는 극장거리였다. 미림, 오성, 인형극장이 쪼르르 있었다. 그래서 영화 <시네마천국> 내용이 연상되기도 한다.”


    세월과 함께 흐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남아있는 사람보다 떠나간 사람이 많은 곳,  '양키시장'. 좁다란 골목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힘찬 목소리로 말하는 할머니들이 보고 싶다면, 아직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있는 양키시장을 가보고 싶다면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보자. 3월 22일(금)~ 4월 3일(수)까지 동구 금곡동에 있는 ‘사진공간 배다리 포토갤러리’에서 ‘양키시장’ 김보섭 사진전이 열린다. 전시회를 시작하는 3월 22일 오픈 당일에는 양키시장 안에서 '양키시장 DVD'도 상영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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