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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헌책방 레지던시 5기 작가 (신이명) 프로필 및 포트폴리오

2023-05-14
조회수 3578


성명 : 신이명 (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졸



[개인전]

2022 파편의 초상, spaceUNIT4, 서울, 한국

2018 바다에서 만날까, 서울예술치유허브, 서울, 한국

2013 What a wonderful world S1, 팔레드서울, 서울, 한국

2013 What a wonderful world S2, 사이아트 갤러리, 서울, 한국

2010 탈색의 정서, 무이 갤러리, 서울, 한국




[기획 및 단체전] 

2019 editable, 수창청춘맨숀, 대구, 한국

2018 완주로컬푸드 <예술농부> 영상부문 선정, 완주문화재단, 한국

2014 아르코 퍼블릭아트 오픈콜 <마로니에 다방>, 서울, 한국

2014 한 평 갤러리, 제주 고산 바다. 제주. 한국

2014 온 더 그라운드, 팔레드서울, 서울, 한국

2013 BYOB Seoul, 스페이스 오뉴월. 서울. 한국

2011 RETRO, 덕원갤러리, 서울, 한국

2010 소통의 코드, 갤러리 반디, 서울, 한국

2010 언어놀이, 성곡미술관, 서울, 한국

2009 young artist, 갤러리 서호, 경기, 한국

2008 Touch, 갤러리 maysnow, 경덕진, 중국

2008 Domino Effect, 이화아트센터, 서울, 한국


  [수상이력]

2019 충무로독립단편영화제 우수상 수상

2019 전북독립영화제 경쟁작 선정

2019 전북가족영화제 ‘잉태’섹션 특별초청

2018 서울노인영화제 'know-ing'섹션 특별초청

2014 아르코 퍼블릭아트 오픈콜 선정 <마로니에 다방>




[기타경력] 

2021 <함께 구르는 기술 : 사진과 움직임 프로토콜> 다큐멘터리 연출

2020 장애예술인 출근길 로드무비 시리즈 <예술하러간다GO> 연출

2019 다큐멘터리 <밥상기억> 연출

2018 포용적예술작가 육성 워크숍 다큐멘터리 연출

2018 다큐멘터리 <찔레꽃> 연출

2014『마로니에 다방』 출간, 제로랩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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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

읽혀질 수 없는 서사를 위한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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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여졌으나 읽혀질 수 없는 서사가 있다. 그것이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읽을 수 없는 곳에 쓰여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서사는 안을 향한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으나 약속된 언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길 없는 고백이기에 그것은 깊고 내밀하다.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서사의 행간은 쓴 사람의 피고름으로 이어져있다. 불쾌하게 끈적이는 질감과 비릿한 새만으로도 타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혹 호기심 많은 누군가 참을성있게 그것을 들여다보려 할지라도 스스로 해독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서사는 태생적으로 고독하다. 읽을 수 없는 곳에 쓰여진 서사는 안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진공의 벽에 둘러쌓인채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내내 맴돈다. 타인은 들어올 수 없거나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곳은 아무리 절박한 외침도 적막하게 만든다. 외침이 거세고 날카로울수록 강해지는 공진현상. 자멸이 예견된 공간에 갇힌 서사는 태생적으로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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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대 고립의 서사

 

우리는 모두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쓴 서사와 읽을 수 없는 곳에 쓴 서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서사의 무게와 깊이는 제각각이다. 타인을 배제한다는 점을 공유할 뿐이다. 읽을 수 없는 언어를 선택해 스스로 타인을 거부했거나 타인의 거부로 어쩔 수 없이 유폐되었거나, 둘 다 고립되기는 매한가지다. 쓰여졌으나 읽혀질 수 없는 서사는 절대 고립의 서사이다.

 

너는 나의 타인이며 나 또한 너에게 타인이므로 나와 너는 결코 서로의 서사를 읽어낼 수 없다. 나와 너의 대화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타인의 서사를 읽어낼 수 있다고 믿는 긍정주의자의 야심찬 시도는 필연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좌절은 분노를 낳는다.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서사를 읽겠다고 나선 자는 어김없는 실패 앞에서 왜 이딴 언어로 서사를 썼냐고 화를 낸다. 읽을 수 없는 곳에 쓰여진 서사를 찾다가 번번히 길을 잃는 자는 애초에 그런 곳 따위 없는 게 아니냐며 의심한다. 결코 읽어낼 수 없는 타인의 서사를 읽어낼 수 없다고 분노하는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서사를 읽어내지 못한다고 타박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읽혀질 수 없는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나와 너는 낯선 세계이므로 우리는 서로의 서사를 읽을 수 없다. 세상은 내가 읽어낼 수 없는 서사로 가득하다. 우리는 나를 결코 읽어내지 못하는 타인들에 둘러쌓여 산다. 세계는 고독하고 무력한 서사의 총체이다. 다만 모두가 읽혀질 수 없는 절대 고립의 서사라는 사실만이 우리를 연결한다.

 

2.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 : 애도

 

나와 너는 절대 동일하지 않다. 나는 너라는 서사를 읽을 수 없고 너는 나라는 서사를 읽을 수 없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사건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실패를 예고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 나는 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랑의 시작은 곧 종말이라는 결론을 인정할 때, 나는 너를 통과할 수 있고, 세계를 유영할 수 있다.

 

존재를 사랑하는 이는 물이 된다. 흐르고 배출되기 위해서, 적시고 증발되기 위해서 물이 된다. 흐르고 적시며 사랑을 시작하고 배출되고 증발됨으로서 사랑을 애도한다. 내가 너라는 읽혀질 수 없는 서사를 사랑하는 일은 사랑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과 같다. 사랑하므로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준비한다. 함께 땅을 파고 묘비를 쓰고 봉분을 다지며 무덤을 만든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도래할 죽음을 기쁜 마음으로 애도한다. 그것이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자, 또 하나의 절대 고립의 서사인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3.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흐느끼며 애도한다.

 

결국 사랑과 애도는 동일하다. 내가 너를 안기 위해서는 너라는 서사를 애도해야 한다. 너를 애도하는 일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는 나와 너의 불가능한 사랑을 실현하며 참혹한 세상의 비정한 시간을 견딘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저 원으로 둘러모여 힘없이 흐느끼며 애도한다. 나와 너는 애도의 공명을 통해서만 끝내 서로를 확인할 수 있다.

 

절대 고립의 서사를 은유하는 일은 당신을 향한 나의 애도. 그것은 불안하게 떨리고 맥없이 무너지는 나약한 형상과 스미고 번지고 녹아내리고마는 무력한 의미로 가득찬 풍경이다. 흐느끼는 풍경 속에서 나는 당신을 통과한다. 나는 당신의 서사를 읽을 수 없지만, 당신 또한 나처럼 읽혀질 수 없는 서사임을 기쁜 마음으로 노래한다. 예술은 읽혀질 수 없는 서사들에 대한 사랑가인 동시에 진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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